2009년 11월 12일 목요일

법륜스님의 인터뷰중

-죽으면 정말 극락이나 지옥에 갑니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 행복하게 살면 과거도 행복한 것이고, 미래도 행복한 것이에요. 천당이 있다면 마땅히 갈 수 있는 삶을 사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있으면 갈 것이고, 없어도 상관없고. 과거와 미래는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영화 같아요. 꿈 같은 거죠. 지나간 과거는 현재를 사는 데 교훈될 만한 것을 발견하는 것이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미래가 현재가 될 때 현명하게 대응하기 위한 것이지 미래만 생각하면 근심 걱정이 생기고,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면 괴로움이 생겨요."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먹기 쉽지 않잖습니까.

"담배 피우는 게 쉬워요? 안 피우는 게 쉬워요? 흡연자라는 조건을 빼면 안 피우는 게 쉽죠. 안 피우면 돈도 필요 없고, 사러 안 가도 되고, 봉지 안 뜯어도 되고, 안 빨아도 되고, 안 뱉어도 되고 재를 안 떨어도 되잖아요. 그런데 피우는 사람에게는 안 피우는 게 더 어려운 일이에요. 피우는 습관이 들었기 때문이거든. 습관이 들었다는 걸 불교 용어로 카르마, 업식이라고 해요. 습관이 들어버리면 쉬운 일이 어려운 일이 돼 버리는 거에요. 습관에 속박받고 습관대로 살아가면 반드시 과보가 따라와요. 그런데 사람들은 습관을 중심에 놓고 그걸 합리화시키는 해석을 자꾸 하거든. 정치인들 보고 국민들이 다 '미쳤다'고 해도 자기들은 그 인식 체계 안에 있어요. 꿈 속에 있는 것처럼 똑같이 사물을 봐도 안 보이고, 똑같이 들어도 안 들리는 거죠."

2009년 11월 2일 월요일

기적을 부르는 뇌(The brain that changes itself) 中

"우리에게는 어린 시절에 강력한 학습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날마다 새로운 것이 가득했었죠. 그 다음 우리는 취직한 초창기에 맹렬히 학습에 몰두해서 새로운 기술과 능력을 습득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점점 더 숙달된 기술과 능력을 운영하기만 합니다."

심리학적으로, 중년은 종종 매력적인 시기이다. 다른 모든 것이 동등하다면, 중년은 이전까지의 기간에 비해 비교적 평온한 기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년의 몸은 청년기 때처럼 변화하지 않는다. 중년인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확고한 느낌을 가지고 있고 한 직업에 숙달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활동적이라고 여기지만, 스스로를 속이며 자신이 예전에 하듯이 학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젊었을 때 새로운 어휘를 학습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익히면서 했듯이 바짝 주의를 집중해야 하는 과제에 몰입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신문을 읽고, 여러 해 동안 한 직업에 종사하고, 모국어를 말하는 것과 같은 활동들은 대개 숙달된 기술의 재연이지 학습이 아니다. 70대에 다다를 무렵이면, 이미 50년쯤은 가소성을 조절하는 뇌 안의 체계들을 규칙적으로 바쁘게 하지 않고 지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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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에 내성이 생기는 것과 흡사하게, 행복한 연인들에게서도 그들이 서로 익숙해짐에 따라 내성이 발달할 수 있다. 도파민은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일부일처의 배우자들이 서로에게 내성이 생기면서 그들이 한때 가졌던 낭만적 황홀감을 잃을 때, 그 변화는 그들 중 한쪽이 부적합하거나 따분하다는 신호가 아니라, 그들의 가소적 뇌가 서로에게 너무 잘 적응해서 서로에게서 이전과 같은 쾌감을 얻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신호라 할 수 있다.

다행히도, 연인들은 자신들의 관계에 새로운 요소들을 첨가함으로써 도파민을 자극해서 황홀감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부부가 낭만적인 여행을 다니거나 함께 새로운 활동을 시도하거나, 새로운 유형의 옷차림을 하거나 서로를 놀라게 할 때, 그들은 참신한 시도로 쾌감중추를 켬으로써 그들이 경험하는 그 모든 것들이 그들을 들뜨고 즐겁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론 그때는 다시 서로가 서로에게 두근거림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일단 쾌감중추가 켜지고 세계화가 시작되면, 사랑하는 이의 새로운 이미지는 다시 예기치 않은 쾌감과 함께 결합하여 새로운 것에 반응하도록 진화된 뇌 안에 가소적으로 배선된다.

삶을 진정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면 우리는 배우고 있으야만 한다. 삶이나 사랑이 너무 뻔해지고 배울 것이 더 이상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일때, 우리는 안정을 잃게 된다. 이는 가소적 뇌가 더 이상 자신의 본질적인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내놓는 항의가 아닐까.

2009년 10월 14일 수요일

두 번째 화살-아함경 미산스님 강의 중

두 번째 화살

"어리석은 사람들은 사물을 대하면 좋다거나 나쁘다고 느끼고 그것에 매달려 원망하기도 하고 애착하기도 한다. 마치 두 개의 화살을 맞으면 더욱 괴롭듯이 몸의 느낌과 마음의 느낌을 가지고 마음에 뿌리를 내린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몸이 사물에 대하여 고락을 느끼더라도 그것에 매달리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마음으로도 매달리고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뿐이다. 비유하면 두 개의 독한 화살이 날아와도 두 번째의 화살은 맞지 않는 것과 같는니라.

지혜로운 이는 육신의 느낌을 갖더라도 마음에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고락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즐거움을 만나도 함부로 하지 않고 괴로움에 부딪혀도 근심을 더하지 않으며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모두 버려 고락에 따르지도 않고 어기지도 않을 뿐이다." - 아함경 중-

이 말씀은 삶 속에서 수행을 하는 데 매우 긴요한 말씀이다. 괴로운 일이나 잘못한 일이 있을 때 그 일은 그 일로 놓아 버리고 끝내야지, 그것을 계속 붙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탓하고 남까지 탓하게 되면 두 번째 화살뿐 아니라 수 없는 화살이 계속 박히게 됩니다. 특히 집착을 놓아 버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집착은 확 놓아 버려야 합니다. 방법을 아무리 이야기해 보았자 머리로 이해하면 결코 놓지 못합니다. 그럴 때는 일단 행동으로 옮기면 머리가 정리가 됩니다. 놓지 못한 것이 있으면 몸으로 마음으로 확 놓아 버리세요. 그러면 새로운 국면이 전개됩니다.

이 사바세계에서는 아무 일 없이 행복하게만 사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스스로 에게 화살을 계속 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딱 한 번 화살을 맞고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습니다.

2009년 10월 5일 월요일

조신의 꿈-설화

옛날 신라(新羅)가 서울이었을 때 세규사(世逵寺)―지금의 흥교사(興敎寺)―의 장원(莊園)이 명주(溟洲) 날리군(捺李郡)―지리지(地理志)를 상고해 보면, 명주에는 날리군(捺李郡)이 없고 오직 날성군(捺城郡)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본래 날생군(捺生郡)이니 지금의 영월(寧越)이다. 또 우수주(牛首州) 영현(領懸)에 날영군(捺靈郡)이 있는데 본래는 날이군(捺已郡)이요 지금의 강주(剛州)다. 우수주(牛首州)는 지금의 춘주(春州)니 여기에 말한 날리군(捺李郡)은 어느 곳인지 알수가 없다. ―에 있었는데, 본사(本寺)에서 중 조신(調信)을 보내서 장원(莊園)을 맡아 관리하게 했다. 조신이 장원에 와서 태수 김흔(金昕)의 딸을 좋아하고 아주 반했다.


 여러 번 낙산사(洛山寺) 관음보살(觀音菩薩) 앞에 가서 남몰래 그 여인과 살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로부터 몇 해 동안에 그 여인에게는 이미 배필이 생겼다. 그는 또 불당(佛堂) 앞에 가서, 관음보살이 자기의 소원을 들어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다가 생각하는 마음에 지쳐서 잠시 잠이 들었다.


 꿈 속에 갑자기 김씨 낭자(娘子)가 기쁜 낯빛을 하고 문으로 들어와 활짝 웃으면서,

 "저는 일찍부터 스님을 잠깐 뵙고 알게 되어 마음 속으로 사랑해서 잠시도 잊지 못했으나 부모의 명령에 못 이겨 억지로 딴 사람에게로 시집갔었습니다. 지금 내외(內外)가 되기를 원해서 온 것입니다."

 이에 조신은 매우 기뻐하며 그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녀와 사십여 년 간 같이 살면서 자녀 다섯을 두었다. 집은 다만 네 벽뿐이고, 좋지 못한 음식마저도 계속해 갈 수가 없었고, 마침내 꼴이 말이 아니어서 식구들을 이끌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얻어먹고 지냈다.


이렇게 십 년 동안 초야(草野)로 두루 다니니 옷은 여러 조각으로 찢어져 몸도 가릴 수가 없었다. 마침 명주(溟洲) 해현령(蟹縣嶺)을 지날 때 십오 세 되는 큰아이가 갑자기 굶어 죽어 통곡하면서 길가에 묻었다. 남은 네 식구를 데리고 그들 내외는 우곡현(羽曲懸)―지금의 우현(羽懸)―에 이르러 길가에 모옥(茅屋)을 짓고 살았다. 이제 내외는 늙고 병들었다. 게다가 굶주려서 일어나지도 못하니, 십 세 된 계집아이가 밥을 빌어다 먹는데, 다니다가 마을 개에게 물렸다. 아픈 것을 부르짖으면서 앞에 와서 누웠으니 부모도 목이 메어 눈물을 몇 줄이고 흘렸다.


 부인이 눈물을 씻더니 갑자기,

 "내가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는 얼굴도 아름답고 나이도 젊었으며 입은 옷도 깨끗했었습니다. 한 가지 음식도 그대와 나누어 먹었고 옷 한 가지도 그대와 나누어 입어, 집을 나온 지 오십 년 동안에 정(情)은 맺어져 친밀해졌고 사랑도 굳게 얽혔으니 가위 두터운 인연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는 쇠약한 병이 해마다 더해지고 굶주림과 추위도 날로 더욱 닥쳐오는데 남의 집 곁방살이나 하찮은 음식조차도 빌어서 얻을 수가 없게 되었으며, 수많은 문전(門前)에 걸식하는 부끄러움은 산더미보다 더 무겁습니다. 아이들이 추워하고 배고파해도 미처 돌봐주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사랑에 있어 부부간의 애정을 즐길 수가 있겠습니까?

젊은 얼굴과 예쁜 웃음도 풀 위의 이슬이요, 지초(芝草)와 난초 같은 약속도 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가지 같을 뿐입니다. 이제 그대는 내가 있어서 누(累)가 되고 나는 그대 때문에 더 근심이 됩니다. 가만히 옛날 기쁘던 일을 생각해 보니, 그것이 바로 근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대와 내가 어찌해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뭇 새가 다 함께 굶어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짝 잃은 난조(鸞鳥)가 거울을 향하여 짝을 부르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순경일 때에는 친하고 역경일 때에는 버리는 것이 인정(人情)상 차마 할 수 없는 일입니만 가고 머무는 것이 사람의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요, 헤어지고 만남에는 운명이 있습니다. 바라건대 여기서 서로 헤어지도록 하십시다."

 조신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각각 아이 둘씩 나누어 데리고 장차 떠나려 하니 여인이,

 "나는 고향으로 갈 테니 그대는 남쪽으로 가십시오."

 이리하여 서로 작별하고 길을 떠나려 하는데 꿈에서 깨었다.

 타다 남은 등잔불은 깜박거리고 밤도 이제 새려고 한다. 아침이 되었다. 수염과 머리털은 모두 희어졌고 망연( 然)히 세상 일에 뜻이 없다. 괴롭게 살아가는 것도 이미 싫어졌고 마치 한평생의 고생을 다 겪고 난 것과 같아 재물을 탐하는 마음도 얼음 녹듯이 깨끗이 없어졌다. 이에 관음보살의 상(像)을 대하기가 부끄러워지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을 참을 길이 없다. 그는 돌아와서 해현에 묻은 아이를 파보니 그것은 바로 돌미륵(石彌勒)이다. 물로 씻어서 근처에 있는 절에 모시고 서울로 돌아가 장원을 맡은 책임을 내놓고 사재(私財)를 내서 정토사(淨土寺)를 세워 부지런히 착한 일을 했다. 그 후에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 알 수가 없다.[출전 : 삼국유사(三國遺事)]

2009년 9월 11일 금요일

책에서 발췌(1)

프랑스의 필리프 모리스란 사형수가 쓴 자서전 중에서 발췌

그는 살인과 탈옥등의 죄로 사형을 언도받고 수감하던 중 공부를 시작하여 감옥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인물이다.

<증오에서 삶으로>에서 발췌

"...어느 날 앞에 있는 한 교도관이 울기 시작했다. 놀란 나는 왜 그러는지 물었다. 그는 월급날이 아직 멀었는데 집세와 공과금을 낼 돈이 없다고 말했다. 절망에 빠진 그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그가 문제에 봉착한 것은 틀림 없었다. 하지만 그날, 문제는 실제로 존재하기보다, 우리들의 객관성을 마비시키는 주관성의 산물이라는것을 깨달았다. 내가 눈하나 깜짝이지 않고 사형수의 방안에서 이렇게 웅크리고 있는데, 나보다 몇살 더 위인 그가 돈 몇푼이 없어 삶을 직시하지 못한다니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삶은 때로 우리를 해결해야 할 어려운 문제에 맞딱뜨리게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생각해야 한다. 해결하기 힐들 때에는 다음으로 넘어가 우리들의 무능함을 받아 들이고, 무능함을 안고 살면 된다.

그러므로,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후로 나의 삶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상황을 정의하고, 장애물을 가려낸다. 해결할 수 있는것은 해결하고, 변화 시킬수 없는것은 그대로 안고 살아간다..."

"...인간은 넘어졌을 때 일어나 걸어야 하고, 편안함을 거부하며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선택해야 하고, 일단 선택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그 삶을 지키고 구체화하며 한 낱 헛된 꿈이나 채워지지 않은 욕망의 상태로 버려두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이 삶의 매순간을 책임질 수 없는것도 사실이다. 떄로 삶의 지겨움이나 중압감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방치한다.

바로 그러한 순간에 운명은 예기치 않은 형태로 우리 삶속으로 침입한다. 그러고는 우리 삶을 매섭게 채찍질하거나 따뜻하게 보듬는다. 게다가 삶을 빈틈없이 엄격히 통제하는 순간에조차도 우리는 다른이들, 예측 불가능한것들, 우리 자신들의 무지와 많은 다른 요인들에 부딪힌다.

이렇듯 삶은 이따금 한 인간을 뒤흔들어놓고 전혀 예기치 않은, 정반대의 길로 밀어붙인다.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자신의 앞날을 결정짓는 전체 요인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엇더라면, 아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미리 엿볼수만 있었더라면,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눈 감짝할 사이에 모든것이 뒤엎어지기도 하고, 하룻밤사이에 상황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明心寶言(2)

한해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시험에 떨어진 학생에게 물어보라.

한달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조산아를 낳은 어머니에게 물어보라.

한주일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주간지의 편집자에게 물어보라.

한시간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약속시간을 기다리는 연인에게 물어보라.

일분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버스를 놓치고 허둥거리는 사람에게 물어보라.

일초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아차하는 순간에 벌어진 자동차 사고로 소중한 존재를 잃은 사람에게 물어보라.

2009년 9월 10일 목요일

요가의 가르침

충실한 삶을 살고자하면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1. 건강
맑은 의식을 유지하자면 몸이 언제나 건강해야 한다. 몸을 정결히 해야 하고 포만감이 들 정도로 많이 먹는 일이 없어야한다.

2. 지분안족
지금 자기가 가진것을 소중하게 생각할 것

3. 의연함
사소한 감정에 휘말리지 말것. 죽, 불의의 사태나 장애를 두려워 말고 덧없이 사라지는 즐거움에 혹하지 말것.

4. 공부 
성전을 읽고 명상을 하면서 깨달음을 향해 정진할것

5.봉헌
사람은 자기를 위해 사는게 아니라 자기안에 있는 어떤 초월적인 것을 위해 사는것이다. 무엇보다도 겸허해야 한다.

明心寶言(1)

가난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부끄러워할 것은 가난하면서도 소망이 없는 것이다.

지위가 낮은것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두려워 할 것은 지위가 낮으면서도 능력을 향상 시키려고 하지 않는것이다.

나이를 먹는것은 슬퍼할 일이 아니다.

슬퍼할 것은 나이를 먹으면서도 인생을 낭비하는것이다.

죽는것은 슬퍼할 일이 아니다.

슬퍼할 것은 아무도 모르게 죽는 일이다.    

--- 중국 속담 ---


윤회-생사의반복(아함경)

비구들이여, 이 윤회는 그 처음을 알 수가 없다. 최초의 시간은 알려질 수 없다.

무명에 의해 뒤덮여 있고, 갈망에 의해 속박되어 있는 중생들은 이 생사의 세계에서 이리저리 헤매며 삶과 죽음을 되풀이 한다.

비구들이여, 생각해 보라. 어떤 것이 더 많은가를. 이 생사의 세계에서 이리저리 혜매며 삶과 죽음을 되풀이하면서, 싫어하는 대상과 만나고 좋아하는 대상과 헤어지면서, 슬픔 때문에 울부 짖으며 흘림 눈물과 저 사해四海의 바닷물 중에 어떤 것이 더 많은가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오랫동안 생사를 거듭하면서, 부모 아들 딸 형제 자매와의 사별 때문에 괴로워해 왔다. 이처럼 이 생사의 세계에서 이리저리 헤매며 삶과 죽음을 되풀이하면서, 싫어하는 대상과 헤어지면서, 슬픔때문에 울부짖으며 흘린 눈물이 더 많지, 저 사해四海의 바닷물이 더 많지는 않다.

비구들이여, 생각해 보라. 어떤것이 더 많은가를. 이 생사의 세계에서 이리저리 헤매며 삶과 죽음을 되풀이하면서, 참수형을 당해 흘린 피와 저 사해四海의 바닷물 중에 어떤 것이 더 많은가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오랫동안 생사를 거듭하면서, 마을의 도둑, 노상강도, 간부姦夫인 도둑으로서 붙잡혔었다. 그리하여 참수형을 당해 흫린 피가 더 많지 저 사해四海의 바닷물이 더 많지는 않다.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비구들이여, 이 윤회는 그 처음을 알 수가 없다. 최초의 시간은 알려질 수 없다. 무명에 의해 뒤덮여 있고, 갈망에 의해 속박되어 있는 중생들은 이 생사의 세계에서 이리저리 헤매며 삶과 죽음을 되풀이해 왔기 때문이다. <相應部>